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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건양의 자랑입니다

김민경 동문(시각디자인학과 98학번)
2015.02.03
첨부파일 :
  •   
누구나 자신들만의 꿈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그 꿈을 향해 뛰어간다. 지금까지도 연극의 삶을 살
아온 분이 있다. 현재 우리대학의 디지털콘텐츠학과 공연매니지먼트 강의를 하고 계시는 김민경 동
문을 만나보았다.
Q. 연극에 대해서 언제부터 관심을 가게 되었나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저희 학교 연극서클의 공연을 한편 보게 되었습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0시
를 향하여>라는 작품이었지요. 고등학생들이 하는 공연이었지만 처음 공연이라는 것을 본 저에게
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 공연을 관람하고 나서 용돈을 쪼개 공연들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습
니다. <지저스크라이스트수퍼스타>, <손숙의 담배 피우는 여자>, 그밖에 대학로에서 하는 작품들
을요. 한편의 작품이 공연에 ‘공’자도 모르는 저에게 관심을 갖게 한 것이죠. 그리고 많은 공연을 보
면서 막연하게 저도 저런 무대에서 공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연
기 잘하는 배우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Q. 학창시절에 동아리 광장에 들어가게된 계기가 있나요?
  ‘나는 배우가 될 거니까’라는 생각에 무조건 연극동아리에 들어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연극 동아리 광장의 홍보책상으로 가서 입단 원서를 쓰고 오디션을 보았습니다. 그리
고 저는 건양대학교 극예술연구회 극단 광장 8기로 본격적인 연극동아리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
니다.
 
Q. 광장에서 처음 맡은 역할,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광장에서 처음 맡은 역할은 연극 <굿닥터>의 작가 역할이었습니다. 본 공연이 아닌 1학년 워크
샵 공연이었기 때문에 4~5명씩 조를 나누어 장기자랑의 형식으로 공연을 했었는데요. 공연을 보
신 졸업한 1기 선배님이 저에게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목소리가 배우감이라며….
  저는 그때 더욱더 ‘아! 나는 배우가 되는 게 맞겠구나’라고 저의 꿈을 확신했었습니다. 

Q.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선배님께 미친 영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1학년 1학기 정기 공연인 이만희 작 <돼지와 오토바이>에 변호사 역을 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4학
년 2학기에는 전국대학연극제 출품작 김순지 작 <별을 쥐고 있는 여자>의 여자 1의 출연까지 저의 
연극 동아리 생활을 알차게 보냈습니다.
  보통 4학년 때는 취업준비로 인해 많은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저에게는 광장 생활이 정말 즐거웠
습니다. 수업 끝나고 동아리 방에 가는 발걸음이 정말 가벼웠고 공연 준비를 하고 연습을 하는 게 
행복했습니다.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난 꼭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거야’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Q. 10년 정도 연극 활동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졸업 후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 자세히 알려
주세요.
  졸업 후에 바로 극단을 들어간 건 아니었습니다. 졸업 후 현실이라는 큰 벽에 부딪혔습니다. 그래
서 일단 취업을 하기로 마음먹고 첫 직업으로 작은 광고 회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으
로는 계속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오래 하지 못했었습니다. 
그 다음에 선택한 직업은 학습지 선생님이었습니다. 저는 연극동아리 활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
들과 부모님들에게 인기 있는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적지 않은 돈도 벌면서 생
활하고 있었는데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저는 배우의 꿈이 있었으니까요. 
  그런 시절을 보내고 있던 차에 이상하게도 제 주변에서 나이가 젊으신 분들이 한 달 동안 네 분 정
도가 돌아가신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의 아버지, 후배의 어머니 등등……. 장례식장을 한 주에 한 
번씩 다녀오면서 참 사는거 별거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 나 하고 
싶은 거나 한번 해보자 라는 생각에 극단 로뎀에 오디션을 보고 입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프로 극단에 입단하여 공연한 작품은 알베르 까뮈 작 <오해>의 어머니 역할이었습니다. 24
살짜리가 70~80대 할머니 역할을 했었지요.(웃음)
  정말 즐거웠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연습을 하고 역할에 대해서 고민하고 공연을 올리고. 물론 생
활고에는 많이 시달렸지만 그래도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때만큼은 무대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 저에게 보내주는 박수 “커튼콜”의 짜릿함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
다. 배우들이 힘들어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나에게 보내주는 박수, 이것 때문인 거 같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정말 힘든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생활이 너무 힘들어 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눈물
을 머금고 취직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전 연극에 관련 된 일을 하고자 했습니다. 전혀 
다른 업종에 취직을 하게 되면 영원히 연극을 할 수 없을 거 같아서 역할은 다르지만 같은 업종에
서 일을 하다 보면 저에게도 기회가 올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취직한 것이 넌버
벌 퍼포먼스 <점프>기획사 ㈜예감이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공연기획, 마케팅 일을 하게 되었습니
다. 전공도 디자인이다 보니 인쇄물이나 홍보물을 만들 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입사동기 보다 인정을 받아 빠르게 승진을 하기도 하였지요. 그 이후 저는 공연 기획/마케터로서 
여러 가지 작품을 하게 되었습니다. 넌버벌 퍼포먼스 <점프>, <브레이크아웃>, 연극 <뷰티퀸>, 뮤
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메노포즈>, 가족공연 <파워레인저> 시리즈, <자우림 김윤아>, <빅
마마 신연아> 단독 콘서트, 축제 <코리아드라마페스티벌> 등 저는 공연의 거의 모든 장르를 경험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이충무 교수님과 함께 건양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공연매니지먼트 강
의를 하고 있습니다. 전공은 시각디자인이었지만 제가 꿈꾸던 배우는 아니지만 공연이라는 분야에
서 일 하다 보니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Q. 지금까지의 경험이 선배님께 미친 영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광장활동을 통해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공연을 기
획하고 올릴 때에도 그 활동이 저에게는 바탕이 되어 지금까지 일할ㄴ 수 있었습니다. 	 
 
Q. 향후 미래의 계획은 어떠한가요?
저는 지금까지 10년 동안 공연계에서 일하면서 얻은 노하우와 경험을 바탕으로 공연기획, 마케팅 
이라는 현장성을 살린 교육을 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 제 자신을 많이 채워가고 있
습니다. 
 
Q.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기회가 찾아와도 그걸 잡지 못합니다. 준비한다는 것은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공부를 하
는 것도 모두다 경험입니다. 이런 것들이 나중에 사회에 나갔을 때 정말 중요한 바탕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자기 자신을 많이 채우세요. 많은 경험을 해보세요. 그렇게 차근차
근 준비하다보면 여러분에게는 좋은 기회가 찾아올 것이고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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